
강남 퍼블릭은 왜 하이퍼블릭으로 바뀌었을까
강남 퍼블릭은 오래전부터 운영되어 온 업종이다.
현재는 하이퍼블릭이라는 명칭이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시스템으로 운영되었던 것은 아니다.
최초의 강남 퍼블릭은 어떻게 생겨낫을까?
과거 퍼블릭은 고급 룸살롱의 높은 가격 부담을 낮추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고객층과 운영방식이 달라졌으며 새로운 업종들이 등장하면서 현재의 하이퍼블릭으로 시장이 변화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최초의 강남 퍼블릭은 언제 등장했으며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었을까?
최초의 강남 퍼블릭이 생겨난 계기
강남 퍼블릭의 시작은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 강남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벤처기업들이 성장하면서 기업 접대와 고액 술자리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당시 강남에는 텐프로를 비롯한 고급 룸살롱들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높은 주대와 접대 비용에도 불구하고 많은 고객이 방문하였다.
그러나 2002년 이후 경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벤처기업의 거품이 꺼지고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기업들의 접대 비용도 줄어들었다. 기존 텐프로를 방문하던 고객들도 높은 술값에 부담을 느끼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업장을 찾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등장한 것이 퍼블릭 룸살롱이다.
2005년에서는 2003년 초부터 실속형 룸살롱을 찾는 고객이 증가하면서 퍼블릭 텐프로라는 형태가 등장했다.
또한 삼성동 포스코사거리 부근에 2002년부터 운영된 업장을 퍼블릭 룸살롱의 개념을 처음 정착시킨 곳이다.
퍼블릭(Public)은 영어로 대중 또는 일반인을 의미한다.
기존 고급 룸살롱이 높은 비용을 지불하는 일부 고객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면 퍼블릭은 일반 직장인과 중소기업 관계자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가격 부담을 낮춘 형태였다.
결국 최초의 강남 퍼블릭은 새로운 접객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등장한 것이 아니라 고급 룸살롱의 대중화와 경기 침체에 따른 고객들의 소비 변화에서 시작된 업종이었다.
최초의 강남 퍼블릭은 어떻게 운영됐을까?
초기 퍼블릭의 가장 큰 특징은 정찰제였다.
과거 룸살롱은 고객이나 담당 영업진에 따라 술값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었으며 정확한 비용을 알기 어려운 곳도 있었다.
그러나 퍼블릭은 일정한 가격을 책정하고 고객에게 미리 안내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일부 업장은 홈페이지를 통해 주류 가격을 공개하기도 했다.
또한 양주 세트메뉴를 도입하면서 추가 주문에 따른 가격 부담을 낮췄다.
2005년 매일경제 기사에 소개된 실속형 룸살롱의 국산 17년산 양주 가격은 첫 번째 병 24만원 두 번째 병 17만원 세 번째 병 14만원이었다.
술을 추가할수록 병당 가격이 낮아지는 구조였다.
이는 당시 실속형 업소의 사례이며 모든 퍼블릭이 동일한 가격으로 운영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기존 텐프로와 비슷한 시설과 접객 환경을 유지하면서 주류 가격을 낮추는 것이 중요한 경쟁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퍼블릭은 단순히 저렴한 술집이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고급 룸살롱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일반 고객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든 영업 형태였다.
초기 퍼블릭의 운영방식
초기 퍼블릭은 독립된 룸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고객이 룸에서 술을 마시면 여성 종업원이 동석하여 대화와 접객을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주류 가격은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했지만 여성 종업원의 접객 비용인 TC는 별도로 계산하는 구조였다.
또한 고급 룸살롱에서 근무하던 여성 종업원들이 쩜오와 클럽 등으로 이동하면서 중간 가격대 업장의 인력 구성에도 변화가 생겼다.
2006년에는 이미 퍼블릭을 텐프로와 클럽 등과 구분되는 업종으로 소개하고 있다.
2009년에 소개된 퍼블릭의 규모는 룸 10~20개와 여성 종업원 약 40~50명 수준이었다.
평균 이용시간은 3~4시간 정도였으며 초이스가 가능하고 더블은 없는 형태로 설명되었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초이스를 했을까?
초이스는 최근 하이퍼블릭이 등장하면서 만들어진 시스템이 아니다.
과거 룸살롱에서도 고객이 여성 종업원을 선택하는 문화는 존재했다.
2006년에는 초이스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으며 2009년 매경이코노미에서는 퍼블릭에서 초이스가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적어도 2000년대 중후반에는 퍼블릭에서도 초이스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처럼 여성 종업원이 여러 명씩 입장하여 고객이 선택하는 방식이었는지 또는 선택 이후 정해진 시간 동안 고정으로 착석하는 시스템이었는지는 초기 자료만으로 정확하게 확인하기 어렵다.
중요한 점은 초이스 자체는 오래전부터 존재했으며 하이퍼블릭만의 새로운 시스템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강남 퍼블릭의 몰락
퍼블릭은 등장 초기부터 인기가 없었던 업종이 아니다.
오히려 경기 침체로 고급 룸살롱의 고객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성장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퍼블릭 역시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가장 큰 변화는 다른 업종의 등장이었다.
강남에는 가라오케와 셔츠룸 그리고 레깅스룸 등 다양한 형태의 업장들이 생겨났다.
기존 퍼블릭과 비슷한 가격대에서 서로 다른 콘셉트를 내세우면서 고객층이 나뉘기 시작했다.
또한 저렴한 가격만으로는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기 어려워졌다.
업장마다 시설과 여성 종업원 확보 경쟁이 심해졌으며 기존 단골 고객만으로 영업을 유지하는 데에도 한계가 생겼다.
실제로 2009년 강남 업장들이 매출이 감소하면 간판을 바꾸고 새로운 영업진을 구성하는 일이 빈번하다고 설명했다.
퍼블릭 역시 이러한 시장 변화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특히 고객들의 소비 방식이 달라지면서 기존의 대중적인 이미지와 가격 경쟁력만으로는 다른 업장과 차별화하기 어려워졌다.
다만 퍼블릭 전체가 사라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기존 명칭을 유지하는 곳도 있었으며 새로운 형태로 영업을 전환하는 업장들도 등장했다.
하이퍼블릭으로 바뀌게 된 계기
하이퍼블릭은 기존 퍼블릭의 대중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고객층을 확보하기 위한 명칭과 영업 형태로 확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존 가라오케와 셔츠룸 등 여러 업종이 경쟁하면서 새로운 콘셉트가 필요해졌고 일부 업장에서는 상호와 인테리어를 변경하거나 운영방식을 차별화하기 시작했다.
또한 대형 업장을 중심으로 여성 종업원 확보 경쟁이 심해졌으며 초저녁과 새벽 시간대의 고객을 나누어 확보하는 영업 형태도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하이퍼블릭이라는 이름이 확산되었다.
다만 하이퍼블릭이라는 명칭을 최초로 사용한 업장이나 정확한 탄생 시점은 확인되지 않았다.
강남 퍼블릭의 변화
강남 퍼블릭은 2000년대 초반 고급 룸살롱의 가격 부담을 낮추면서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정찰제와 합리적인 주류 가격이 중요한 경쟁력이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초이스와 접객 시스템을 갖춘 독립적인 업종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강남 룸 시장이 세분화되고 다양한 업종이 등장하면서 기존 퍼블릭의 차별성이 약해졌다.
현재의 하이퍼블릭은 이러한 시장 변화 속에서 등장한 새로운 명칭과 영업 형태다.
결국 강남 퍼블릭에서 하이퍼블릭으로 이어지는 변화는 단순한 이름 변경이 아니라 경기 상황과 고객층 그리고 강남 업장들의 경쟁 방식이 달라진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